검색결과
-
전남도, 서울 광화문 광장서 귀농귀촌 유치▲ 전라남도 [청해진농수산신문] 전라남도가 오는 8일까지 3일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2017 광주전남 귀농귀촌 박람회’에서 유치홍보 활동을 펼친다고 밝혔다.이번 박람회는 수도권 향우회 등 500만 향우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은퇴하는 도시민과, 특히 최근 급증하는 귀농귀촌 희망자에게 광주전남의 귀농귀촌 정보를 안내해 한분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재경광주전남향우회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특히 전라남도와 22개 시군 전체가 함께 참가하는 박람회로 시군별로 귀농귀촌 지원정책, 영농 여건 등을 소개하고, 귀농인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지역의 대표 농특산물을 전시홍보하는 등 도와 시군이 한마음 한뜻으로 귀농귀촌인 유치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김대화 재경광주전남향우회장은 “내고향 전남이 ‘귀농귀촌 최적지’임을 적극 홍보해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침체된 고향의 활력 증진에 앞장서기 위해 박람회를 준비했다”며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향우회원의 참여와 도시민이 함께 참여하기 운동으로 수도권 도시민의 참여를 향우회 차원에서 적극 유도하고, 이 행사를 계기로 광주전남이 살기 좋은 우리의 고향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이낙연 도지사는 “전남은 친환경농업 인증 면적이 전국의 50%를 넘고 최근 농가 소득 증가율이 전국 평균의 2배 가량 높은 편이며, 수산물 생산량도 전국의 52%를 차지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지난해 8천여 명이 전남에 귀농귀촌해왔고, 특히 30대 이하 귀농귀촌자는 전국에서 제일 많은 편”이라고 소개했다.이어 “한국인 가운데 딱 1명만 세계적 위업을 달성한 사람은 유엔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씨, 노벨상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 우주 비행을 한 이소연 박사, 바둑에서 알파고에 한 판이라도 이겨본 이세돌 국수, 세계 메이저 골프대회 최소타 기록을 가진 전인지 선수 등을 꼽을 수 있다”며 “이들 중 반기문 전 총장을 빼고는 모두가 전남의 농축수산물을 섭취하고 성장했다는 점을 감안해 공기 맑고 살기 좋은 광주전남으로 옮겨 사는 길을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
영상마케팅으로 지역 특산물 홍보 최고영상마케팅으로 지역 특산물 홍보 최고 해조류 우수성 알리고, 2014 국제해조류박람회 홍보 사진> [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완도군은 고양이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바다의 농사철이 돌아온 지금 김과 미역, 매생이 생산이 한창이다 이에 질 좋고 맛좋은 해조류를 홍보하고 2014년에 개최되는 해조류 박람회를 국내외로 알리는데 “영상마케팅담당”이 중심에 서 있다. 군은 지난 2010년 8 월,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우리지역에서 생산되는 명품 김, 미역, 다시마 등 특산품과 아름다운 섬과 바다, 문화유적 등을 영상으로 스케치하여 국?내외로 홍보하기 위해 전국에서 유일하게 “영상마케팅담당”을 조직 개편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군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방송, 지역방송, 종편 방송 등의 정보?교양?오락?시사 등 211편 평균 주 2편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으며 금년에도 벌써 한국인의 밥상, 6시 내고향, 어영차 바다야! 등 총 8편의 교양 프로그램을 유치하여 전 국민의 안방으로 찾아들고 있다. 한편, 문화체육과 신영균 과장에 따르면 2014 완도 국제해조류박람회 성공개최를 위해 김, 매생이, 미역, 다시마, 톳 등 해조류와 연관된 프로그램을 집중 유치하여 박람회의 간접 홍보와 우리 지역의 브랜드를 높여간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 한글인터넷 청해진신문.한국/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20130115-21
-
詩]평화를 꿈꾸는 섬 너 평일도여詩. 평화를 꿈꾸는 섬 너 평일도여 시인 . 淸海 서해식 서남해안 다도해상에 한폭의 동양화처럼 유연하게 떠있구나 너 평일도여! 크고 작은 42개섬을 끌어안고 그 자태 늠름하구나 망산에 올라 동서를 살피니 사면 해안이 보고로구나. 미역 다시마 전복양식이 생명의 젓줄일세 조그마한 섬이라고 깔보지 마소 황금일 낳는 저 전복양식장을 보게나 여기가 젊은이가 모여살 별천지 아니겠소 염천 무더위엔 여기가 서울이오. 동백 월송 사동리로 이어지는 은빛백사장 피서객들의 우상으로 떠오르고 월송해변의 운치는 시 한수라도 읊어야 제맛이요. 삼림욕 더없이 좋다하였네 딸뜨는 저녁에 가오리다 월송의 솔밭속을 만조의 물빛과 어우러져 몰아의 경지를 느껴보려네. 흐르는세월은 변화를 재촉하였네 섬속의 오지인 일정리로 섬마을 고속도로가 뚫리고 육지와 연결하는 뱃길이 활짝 열렸네 우리인생 오래 살고 볼일이로구나 도장리 납다지는 삼종어항으로 어선들의 피난처라 4만평 새땅위에 아기자기한 해상공원이 들어선다네. 꽃밭은 있는데 나비는 언제 날아드나 하화전리에 우뚝선 수협은 완도군의 보배라네 마을마다 어르신들의 쉼터 경로복지관 추억에 사는노인들 삶이 기름지고 떠나사는 향우님들 꿈속에 자주뵈는 너이름 지을수없는 고향 평일도. 나날이 평화가 넘치는 섬 평일도라 이섬에 사는 사람들은 해맑은 심성을 지녔도다. 사랑주고 정 주지 못 하오면 저 청자빛 바다를 어찌 보리요 자유가 깃발처럼 나부끼고 온화한 미소가 무지개 처럼 피어 오르는 외롭지 않는섬 평일도를 위하여 너와나 더덩실 한데 어우러져 행복을 노래 하자꾸나 우리들의 영원한 고향으로 언제나 거기에 남아있을 내고향 정든섬 평일도여! ▲ 다시마의 고장 금일(평일도) 금일 시비 제막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 20120306-12
-
특별기고-재경 완도군 향우회 임원들이 홍보대사로마을따라 전설따라 -청해진 특별기고- 재경 완도군 향우회 임원들이 홍보대사로 새롭게 태어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재경완도군 향우회 부회장겸 사무총장 김 영 남 뭍으로 나가는 게 꿈이었고 소 한마리 풀먹이고 지게지고 취로사업과 울력하는 게 너무 싫어 목포로 가는 객선 여비만 있으면 도망치듯 가출하겠다고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고향을 발로 차듯 뿌리치고 유학을 했지만 돈 벌지 않으면 고향땅을 밟지 말아야지 하면서 하루에 한 번 다니는 목포행 여객선에서 수평선너머로 흘린 눈물을 삼키며 두 주먹 불끈 쥐고 가슴속에 담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세월이.. 그 동안의 의미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재경완도군향우회에서는 고향을 바로 알아야 주변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 널리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2박 3일간의 완도투어를 계획했다. 우선 향우회에 봉사하는 지도자들인 12개 읍·면 회장단 임원(군 부회장단, 사무국장단, 여성회장단, 청년회장단)으로 구성하여 고향을 방문하였으며, 우리 모두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정을 듬뿍 체험했다. 그간 10여년 동안 내고향 완도는 세계속의 훌륭한 도시로 급변했다고 우리눈으로 체험하고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모두가 감탄 했던 게 이번투어의 성과이고 모습이었다. 첫 행선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고금대교를 지나 약산 당목항에서 금일 일정항으로 가는 배에 버스를 싣고 금일읍에 도착하니 금일 여성회원들이 대형 프랑카드를 들고 우리 일행들을 위해 환영행사를 해줌에 감동을 받았다. ▶다시마의 고장 금일읍 금일읍은 다시마가 주산지라서 집집마다 밭을 파란골프장 그물로 펼쳐 깨끗한 다시마가 생산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금일읍 다시마는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해 요오드 섭취가 방사능에 좋다고 하여 전국 각지에서 금일 다시마를 매수 하는 바람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일손이 바빴다고 한다. 금일읍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찾은 곳은▶흑염소의 고장 약산면 약산면은 기세가 당당하다고 설명하는 양한창 재경 약산면 향우회님은 산세가 그렇게 좋고 물이 좋아 약초 뿌리를 통한 물이 약초물이라서 약산에서 태어난 사람은 안경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약산흑염소는 약초(삼지구엽초 등)을 먹고 자라 혀가 까맣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목한 흑염소는 험준한 산 계곡에서 약초를 먹고 자라서 무릎이 까져 털이 없는게 특징이고 흑염소 수육고기는 예로부터 궁중보양제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특별히 수육으로 내놓은 흑염소 수육은 정말로 맛이 일품이었고 냄새도 나지 않고 맛이 좋았습니다. 흑염소 두 마리가 10여분만에 동이 날정도로 이 맛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찌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표현을 못함을 아쉬워한다. ▶고금도 이순신 장군의 충무사! 충무사는 선조31년(1598년)정유재란때 충무공이 명나라 수군과 본영을 이곳에 두고 대군을 크게 무찌른 곳입니다. 명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신 이후 이곳에 영구를 봉안 하였다가 지금의 현충사(충남아산)로 옮겨진 유서 깊은 곳인데.......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본영이다. 노량에서 전사한 이순신장군을 83일간 봉안하였다가 1599년 2월 11일 아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장군을 봉안하였던 소나무옆은 지금도 풀이나지 않고 달이뜨는 월송대는 장군의 한이 서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기를 받기위해 다녀간다고 한다. 고금도는 형세가 견고한 요새와 더불어 기름진 농토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므로 수군의 재건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때 당연히 완도의 장정들이 기꺼이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합류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한몫을 했을것이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이순신장군의 몰랐던 내용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약산과 고금을 지나 완도읍을 거쳐 방문한 곳은 ▶항일운동의 성지 소안면 소안도 독립운동! 전국의 면단위로서는 애국지사가 57명(총88명)이나 활동하였다는 항일 운동의 섬 소안도는 일제시대 암흑기에 일제 경찰의 감시와 투쟁속에서 감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벽에 걸어놓고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는 이야기에 너무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해방운동 독립운동성지인 우리 완도 소안도의 자랑스런 선조들에 대해 우리들의 가슴속 깊은곳에 새기면서 고향의 긍지를 갖게 되었다. ▶노화도 전복체험! 노화읍에 도착하니 박성규 군의원과 정유승 노화읍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노화읍 북고리에 있는 전복체험장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김옥남 북고리 이장님의 안내로 배 2척에 나누어 타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전복의 성장과정을 모두가 체험하고 우리 일행들은 감동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더욱더 놀란 것은 전복김치, 전복물회 시식을 맛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향우회 임원들의 전복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보길도 세연정! 정말로 아름다운 섬 어릴적 소풍가고... 산세좋고 물 좋은 축복의 섬 보길도를 다시 한번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무이파 태풍으로 인해 삶의 터전으로 여겼던 전복양식장이 한꺼번에 휩쓸려간 보길도 중리지역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었고 김병희 이장의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안타까움에 고향을 찾은 향우들도 눈시울을 글썽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임영근 청산회장님께서 이천오백만원 상당의 물품을 협찬하였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렇게 훌륭한 고향탐방은 평생 한번하기 쉽지 않은 내 고향의 참모습을 재발견 한 것이 모든 향우회 지도자들의 한목소리였다. 우리고향 건강의 섬 완도가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꼈고 이번 기회를 통하여 특급 홍보대사로 특명을 받고 열심히 우리 고장 완도를 홍보하겠다고 다짐했다. <재경완도군 향우회 부회장겸 사무총장 김영남>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20110922
-
조동옥 광주북구 용봉동장 박사학위 취득재광향우-금일읍출신 조동옥 광주북구 용봉동장 박사학위 취득 ▲ 조동옥 향우-박사 재광청해진 완도향우 조동옥(趙東玉) 용봉동장이 지난 8월20일 호남대학교 대학원에서 자립형 지방행정구역개편에 관한 연구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아 완도군의 위상을 높였다. 조동옥 향우는 전남 완도 금일읍출신으로 초등학교의 학력으로 주경야독하여 검정고시를 통하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졸업자격을 얻어 야간에 대학교를 다니는 등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마친 입지적인 자랑스런 청해진 향우이다. 박사학위 수여식은 내년 2월25일 호남대학교 대회의실에서 가질 예정이다. 조동옥 향우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최근 논의되는 행정구역개편에 대한 이론적 접근과 이울러 국내외 개편 사례를 분석하고, 자립형 지방행정구역 설정과 관련하여 한국의 지방행정구역 개편안의 적절성을 평가하고자 자립형 지방행정구역의 덕목을 연구했다. 국제경쟁력, 주체성, 지속가능성으로 선정하여, 기존의 개편안을 분석하고, 각각의 장단점을 살려 자율과 책임이 조화된 선진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16개 광역행정구역 안과 5개 및 7개의 초광역행정구역 안을 제시한 논문이다. 그는 1970년 완도 금일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하여 1986년에 광주직할시로 전입하여 동구청, 서구청에서 근무하다가 광주광역시에서 청소년과 지방세 업무 등을 담당하면서 상경하애의 정신으로 오늘에 이른 것이다. 검정고시로 시작해 학사에 만족하지 못해 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과정을 2년간 마치고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박사과정 대학원 2년을 마치고 2년간 논문 준비끝에 박사학에 패스한 조 향우는 오직 존경하고 사랑하는 내고향 청해진 완도 선후배와 직장동료와 사랑하는 부인과 아들딸 사위의 아낌없는 성원과 후원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광청해진 완도향우 조동옥(趙東玉) 용봉동장은 멋과 꿈! 희망을 갖고 주민의 복지증진과 더 큰 세상을 향해 열심히 끝까지 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
허사겸글짓기 수상자 글-2009년도2009 허사겸 글짓기 수상자내용 [시] 우수상 내마음속의 황금비 군외중학교 2학년1반 한예준 허사겸은 용감했다 마을사람들을 위한 희생정신과 비장한 최후 비극적인 이야기 이지만 그를 위인으로 빛내주는 발판들이다 첨사 이상돈의 압박에 못이겨 피눈물을 흘려나갔던 완도의 백성들, 그리고 그들의 대표 허사겸, 살아보려고 외치는 발버둥을 무자비하게 수습해버리는 이상돈 그는 더 이상 완도의 백성이 아니다 모두를 위해 희생되어간 선량한 영혼 허사겸,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이다 오늘의 날씨는 비, 매 마음속에 따뜻한 황금비가 내린다 ------------------------------------------------------------------- [시]우수상 아시나요 군외중학교 2학년1반 이주현그를 아시나요 묻혀지고, 잊혀졌던 위인이 떠오르다 고통과 눈물로 일그러진 모두의 삶을 바꾸기 위한 난이 시작되다 백성들은 힘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없어 용기낸 젊은이 민란의 주모자로 남은 민중들에게 행복을 주고 자신을 희생한 그 용기 백성을 구했어도 민란의 주모자란 이유로 잊혀진 그 그를 아시나요 우리의 새로운 위인 허사겸을 아시나요 ----------------------------------------------------------- [수필] 최우수상 남을위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것은 군외중학교 2학년1반 박원미 대한민국 사람중 허사겸을 아는 사람은 열명중 한사람도 안될것이다. 어른들의 말씀으로는 의사 허사겸에 관한 내용이 완도에서는 제가 5학년때 완도대교 바다축제로 인하여 가르치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완도사람인 우리조차도 허사겸 하면 누구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안창호, 김구처럼 유명 하지도 않는데 왜 항상 허사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일까? 그에 대해 조사해본 결과 허사겸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렇다. 그에게는 누구도 따라갈수 없는 용기와 희생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허사겸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는 고종20년 동짓달, 당시 첨사였던 이상돈의 폭정에 의해 항거하여 문순옹, 최여안, 박의중등과 창의를 일으켰던 농민봉기의 우두머리였던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상돈은 과연 어떤 사람 이길래 허사겸이 민란의 주모자로 나선 것일까? 이상돈은 214대 가리포진 첨 절제사로 부임했다 그는 가리포진에 속한 주민중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별 죄목을 씌어 재산을 강탈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해삼, 전복, 미역등을 바치게 하여 부정 축제를 일삼았다 또한 군선을 지을 나무를 베어오라고 시키고 정작 그 나무는 상선과 어선을 만들어 착복했다 그리하여 당시 당인리 이장 허사겸도 나무를 베어 뗏목으로 운반하다가 돌풍을 만나 놓치고 만다 허사겸은 이상돈을 찾아가 시간을 더달라고 요청하지만 안된다 하고 정해진 기간까지 나무를 못베어 오면 죽을수도 있다는 생각에 대흥사로 도망을 가고 그곳에서 뜻있는 사람들 끼리 모여 민란을 일으킨다 그러니 안핵사의 거짓말로 인하여 허사겸의 계획은 산산히 무너지고 결국 허사겸은 다른 사람은 죄가 없으니 돌려 달라고 하며 나만 죽여달라 고 죄를 뒤집어 쓴다 . 그래서 허사겸은 주고 이상돈은 그 죄가 인정되어 귀양을 간다 저는 만약 그렇게 할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절대로 못 했을 것이다 남을 위해서 희생을 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려면 두려움이 앞선다 어떻게 보면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 조차도 생각지 않은 허사겸의 행동이 잘못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허사겸의 커다란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의 용기와 고통이 따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허사겸은 해냈고 그러므로 그는 민란의 주모자가 아닌 의사라고 재조명을 받았다 이런 존경 스런분이 자랑스럽다. 완도인의 조상이라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저는 내고향 완도가 촌마을이라고 창픠 스럽기도 했지만 허사겸에 대해 알고나니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그리 많이 알려진 이름이 아닐지라도 허사겸은 그 누구 보다도 값진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다 그 선물은 바로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신이 가득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 [수필] 우수상 허사겸 군외중학교 2학년1반 장은성고종20년 11월 가리포진에서 허사겸을 중심으로 민란이 일어났다 역사는 이사건을 가리포 민란이라 한다 1882년 제214대 가리포진 첨절제사로 이상돈이 부임한다. 이상돈은은 부임과 함께 가리포진[완도] 관할 각 마을 이장님들을 불러 군선을 지은다고 속이고 출력으로 커다란 나무를 많이 베어오도록 명령한다 그리고 가리포진 주민들 중 재산이 많은 사람들 에게는 별 죄목을 씌어 재산을 강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해삼, 전복, 미역등 값비산 해산물을 바치게 한다 당인리 이장 허사겸은 사람이 다닐 길도 없는 깊은숲과 바위 언덕길로는 거대한 나무를 끌고 도저히 갈수가없어 뗏목에 통나무를 메달고 가리포를 항해다가 돌풍을 만나 뗏목을 잃고 만다 허사겸은 어이가 없었다 죽을 고생을 하여 뗏목을 옮기다 사고를 났으니... 허사겸은 이상돈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하고 기간 연장을 요청 했으나 처음부터 군선이 아닌 상선과 어선을지어 착복한 이상돈은 그 요청을 받아 줄 리가 없었다 허사겸은 이상돈에게 위로는 커녕 곤장을 맞고 당인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기간에는 나무를 베어올 자신이 없어 위기를 느껴 몰래 대흥사로 도피 생활을 했다 대흥사에서 밥을 얻어 먹으며 땔감 나무등 잔심부름을 하고 지냈다 그곳에서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리포진 첨절제사 이상돈의 학정과 수탈에 도피해온 사람들을 알게됬다 그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고향 가족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던중 이상돈을 몰아내지 않고는 영원히 가리포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다는 의견일치를 모았다 허사겸과 그의 일행들은 가리포에 돌아가기로 했다 가리포진에 쳐들어가 이상돈을 붙잡아 죽이지는 말고 당시 영암군 남창에 버리기로 계획했다 허사겸은 문사순,최도일,최여집,차운집,박의중등과 가까운 섬과 마을에 비밀리에 연락을 했다 마침내 거사날을 받았다 일부는 배를타고 많은 사람들은 산을넘어 석장마을 정자나무 아래 모여 이상돈을 몰아내고 새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의견을 모으고 가리포진에 쳐들어갔다, 진을 지키는 일부 병사들은 기세에 놀라 달아나 버리고 이상돈은 체포하여 남창에다가 버렸다 그리고 이상돈이 노략질한 재산과 곡식을 골고루 나누고 강진 현감에게 이사실을 알렸다 조정에 보고가 올라가고 조정은 안핵사를 파견하여 안핵사는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무장 해제를 했다 안핵사는 강진현과 장흥부에 연락하여 가리포 민란의 주모자를 체포하여 역모죄로 고문을 하였다 허사겸은 역모자로 모두가 죽게됨을 감지하고 안핵사와 강진현감 장흥부사에게 자신 혼자가 일으킨 봉기를 자백하고 나머지 백성들은 무죄하니 풀어줄 것을 요청하면서 허사겸은 결국 주모자로 사형을 당한다 모두가 고통당하고 힘들때 그는 나서서 세상을 바꿔 가리포 완도를 살려보자고 외쳤다 민중과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받친 가리포진의 숭고한 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면 완도 사람들은 완도인으로서 완도의 혼 허사겸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 [수필] 우수상 사람과 사람사이 군외중학교 2학년1반 박하니 우리 완도는 서울처럼 발전되고 사람이 붐비는 곳이 아닌 작고 아름다운 농어촌 마을이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때 부터 솔직히 내고향 완도를 너무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완도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 완도원동에서 완도대교 바다축제가 매년 열리는데 이곳에서 허사겸 글짓기 대회를 하였다 나는 도대체 허사겸이 어떤 사람이길래 우리고장 바다축제에서는 허사겸 글짓기 대회를 년년히 하는점이 궁금하기도 하였다 평소에 글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저는 왠지 허사겸에 대해 알게되면서 내고향에도 이런 의인이 있었구나 하며 완도의 정신에 대해 더욱 많이 알게 됬어요 그래서 저는 우선 허사겸을 알기위해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삼겸 선생님은 참으로 용기있는 의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883년에 완도에서 이상돈이라는 탐관오리가 부임해 왔을대 이상돈은 가리포진에 속한 주민들의 재산을 별 죄목을 다붙여 강탈하고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까지 해삼,전복,미역등 값비싼 해산물을 바치게 하여 부정축제를 하였다 이상돈은 가리포진 각마을 이장님을 불러 군선을 지은다고 속여 커다란 나무를 베어오라는 부역을 시켰다 당인리 이장 허사겸은 깊은숲과 바위언덕이 심한 육로로는 통나무 운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통나무에 땟목을 메달고 해상으로 운반하다가 돌풍을 만나 뗏목을 놓치고 말았다 허사겸은 이사실을 이상돈 첨사에게 고하여 작업연장을 요청하였으나 이상돈은 곤장을 때리며 거절한다 허사겸과 주민들은 이상돈 첨사의 탄압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허사겸으등 주민들은 가리포진으로 몰려가 이상돈을 글어내고 죄를밝혔다 그리고 배에 실어 해남남창에다가 버렸다 허사겸은 이상돈이 약탈하여 모은재물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허사겸은 중앙에서 파견된 관군에 의해 주모자들과 체포되어 강진현으로 끌려가 고문을당하고 곤장을 맞았다 허사겸은 자신은 물론 수백명이 죽을 것을 짐작하고 모든일은 자신혼자 꾸미고 저질렀으니 다른사람들은 풀어줄 것을 원했다 결국 허사겸은 목이잘리고 다른사람은 풀러나게 된다 아무리 이상돈첨사가 탄압이 심했다지만 나는 절대로 허사겸처럼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못했을 것이다 용기있는 행동은 커녕 변명하고 도피를 했을 것이다 요즘 현대사회 에서는 직책이 높은 사람에게 아부를 하고 높은사람 말에는 무조건 복종하고 아첨하는 지금의 사회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허사겸처럼 의를 위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하나만 희생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홀로 죽음을 자초햇던 그 정신을 회상하니 정말 멋진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희생은 말로는 그거 조금 배려하고 이해 하며는 되는 거잖아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죽은다는것은 솔직히 실천 하려면 쉬운 것이 아니다 양초처럼 자신은 까맣게 타들어가며 녹아 없어지면서 남에게는 환한 불을빛을 만들어주는 그 고귀한 희생은 너무나도 힘든 것이다 하지만 허사겸은 이런 고통을 자신 혼자 희생으로 다른사람을 살리고 탐관오리를 몰아냈던 그정신은 바로 허사겸정신이다 우리는 허사겸은 좋은공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의사 허사겸 선생님을 알게 되면서 우리 완도의 혼을 더욱 잘알게 되었고 생각과 고향에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사람은 언제나 함께 남을 위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 2009 군외면바다축제 <기동취재반, 완도서부 정완봉기자>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www.wandonews.kr입력:20090519-25
-
청해진칼럼- 지역축제와 향우회, 고향과 향우는 가까운 이웃청해진칼럼 지역축제와 향우회, 고향과 향우는 가까운 이웃 ▲ 서해식 도민편집장 큰 나라인 미국이나 중국 호주나 러시아를 돌아보고 오는 사람은 반나절 생활권이 돼버린 조그마한 우리나라를 볼 때 고향을 떠나 사는 향우들이 고향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거리라고 본다. 옛날 교통수단이 열악할 때는 한번 고향을 떠나면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 고향이라 유행가 가사처럼 고향무정이니 꿈에 본 내고향 등 향수를 달래는 음악이 자리 잡았다. 한번 고향을 떠나면 영원히 못 만날 것 같은 친구나 그리운 사람들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다. 광주에만 나가도 고향사람들이 고향소식을 소상히 잘 알고 있다. 고향 청해진완도는 한때 14만의 인구가 살았고 금일읍의 경우 평일도만해도 1만4천명이 살았다. 가장 인구가 많이 감소한 금당도의 경우 지난70년대에 6,400명이 거주했는데 지금은 고작 1,200명 정도가 거주하고 생일면은 덕우도를 빼면 1,000명도 못된다. 옛 우리선조들은 섬마을에서 태어나면 뭍에 나가보지 못하고 기차나 버스구경도 못한 채 섬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향우들도 터를 잡고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향우회를 조직하여 해마다 정기적인 총회와 축제성격의 체육대회를 열고 있다. 완도군만하더라도 12개읍면이 해마다 화합과 상생을 기본으로 크고 작은 지역축제를 열고 있다. 옛날은 읍민의 날, 면민의 날 체육행사였으나 최근 군에서 읍면행사에 2천만원씩 행사지원금을 의회승인으로 군비로 지원해 금당도에선 섬마을 축제, 생일도는 미역축제를 열고 약산은 삼문산 진달래축제, 군외는 대교축제, 보길도는 윤선도문화축제, 고금도는 월송축제, 노화는 전복축제, 금일은 다시마축제, 소안은 항일운동기념축제, 청산은 슬로우걷기축제, 신지도는 명사십리 유채꽃축제로 면민의 날을 열고 있으며 완도군은 장보고축제 등 고향 떠난 향우들을 손짓하여 부른다. 읍면축제에 향우회 마을별 임원들이 관광버스를 전세내어 내려오며 재경향우회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향우회 행사 때 고향에서 이장단, 새마을 부녀회원, 각종 사회단체장들을 초청하여 향우회 행사에 고향 어르신들을 모신다. 읍면의 발전상이 소개되고 향우들은 일년 동안의 활동상을 보고한다. 체육대회는 마을별 옛날 시골학교의 운동회를 연상 시킨다. 고향이 서울로 옮겨간 셈이다. 이젠 고향과 향우는 함께 되어 완도 장보고장학재단에 향우들이 성금을 보내고 지역 읍면축제에 축제지원금도 내려 보낸다. 금일읍의 경우 매년1,000만원의 축제지원금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 글로벌시대의 고향은 이제 가까운 이웃이다. 인구6만이 무너진 완도지만 앞으로 돌아가 살고 싶은 땅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제2의 장보고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고향과 향우는 멀리 있지 않다. 더욱 거리를 좁혀 자랑스런 고향 청해진 완도를 위해 한뜻 한마음이 되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20090429-0505
-
고향은 서울로 서울은 고향으로, 재경 금일읍향우회고향은 서울로 서울은 고향으로, 재경 금일읍향우회 축제 팡파르 한양공고교정 ▲ 재경금일읍향우회 총회 재경금일읍향우회 (회장 조길호)가 언제나 찾고 싶은 내고향 금일사람들의 세상속으로 라는 슬로건을 걸고 지난 4월11일12일 양일간 전야제는 을지로에 있는 아카시아호텔에서 총회 및 한마음체육대회는 신당동에 자리한 한양공고교정에서 열렸다. 수도권 향우 1,5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뜨거운 열기속에서 진행되었다. 전야제는 고향금일에서 초청되어 올라간 사람들을 위한 환영만찬 행사로 향우회 임원들과 상견례가 이뤄졌으며 12일 본행사는 오전9시에 시작되어 1부행사로 조길호 회장의 대회사 손경무 재경 완도군향우회장의 축사와 김영록 국회의원 축사, 조영택 국회의원의 축사, 박신희읍장, 신의준 군의원의 축사가 있었다. 유인국, 정송균, 조재덕, 김순옥, 임기출, 유주봉, 이성길, 김광수씨가 공로패를 받았고 김명순 이윤정씨가 효부상을 받았다. 한마음체육대회는 마을별 향우회가 팀을 이루어 각종경기를 펼쳤고 고향이장들 부녀회원들과 재경마을향우회장들과 부녀회장들이 두팀이 되어 줄다리기를 하여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조길호 회장은 재경향우회 축제는 고향이 서울로 다시마축제는 서울향우가 고향으로 찾아 간다면서 고향과 향우는 하나인 것을 강조했다. 재경금일 향우회는 해마다 다시마 축제에 1,000만원의 협찬금을 지원해 오고 있다. <완도동부 서해식 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 입력:20090421-27
-
재경완도군향우회와 읍면회장단 고향방문투어재경완도군향우회와 읍면회장단 고향방문투어 제1회 세계슬로우걷기축제 및 내고향완도12개읍면 고향투어 ▲ 재경완도군향우회 읍면회장단 고향방문 투어 재경완도군향우회(회장 손경무)회장단과 읍면회장단이 제1회 슬로우걷기축제 및 내고향완도 12개읍면 고향투어를 지난4월17일부터 19일까지 2박3일 동안 관광버스를 전세하여 35명이 고향완도를 찾았다 첫날은 금일읍과 생일면, 금당면, 3개읍면의 해상관광과 금당면사무소방문, 금일읍 해수욕장과 소량대교 탐방을 하고 관광해설사 서해식 이병석씨가 함께 봉사했다. 특히, 금당8경 절경에 감탄사의 탄성을 지르며 금일의 거북섬을 둘러보면서 금일읍에서 1박하고 다음날 약산, 고금관광을 한 후 청산으로 이동하여 제1회 세계슬로우걷기대회 행사에 참여한 후 청산에서 1박하고 19일 소안도와 노화도, 보길도를 거쳐 귀경길에 올랐다. 재경완도군향우회 손경무 회장과 정송균 사무총장은 바쁜 도시생활에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고향 완도사랑투어에 참가했다며 슬로우걷기대회가 인생을 천천히 생각하는 느림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슬로우걷기축제 성공을 축하했다. <완도동부 서해식 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www.wandonews.kr 입력:20090421-27
-
金容煥이 만난사람 -박문섭 죽청우편취급국장金容煥이 만난사람 -박문섭 죽청우편취급국장 언제나 고객 입장에서... 어사 박문수 우체국 24년경력, 인터넷카페 40개운영 어사 박문수가 떴다. 어디에? ▲ 암 행 어 사 - 박 문 수 <박문섭 죽청우편취급국장> 전남 완도군 완도읍 죽청리 농공단지에 박문수어사가 완도중학교 동문회, 내고장 농수산물 팔아주기운동본부 등 인터넷카페 40개를 운영하고 있어 인터넷에서 유명하다. 지난 1999년 완도우체국 24년 근무를 마치고 죽청리 농공단지에 정보통신부에서 인가를 받아 죽청우편취급소로 개소하여 지난해 정보통신부가 지식경제부로 변경되면서 2008년10월 죽청우편취급국으로 개칭되어 소장에서 국장으로 변경된 어사 박문수(문섭 011-624-5391)를 인터뷰를 위해 만났다. 인터뷰를 사양하는 어사 박문수를 설득해 들어보니 한마디로 괴짜인생으로 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고 진지한 이야기에 타주는 커피한잔이 더욱 향기가 진동했다. 완도중학교 동문회 카페와 내고장 농수산물 팔아주기운동본부 카페 등 인터넷카페 40개를 운영하고 있단다. 특히, 완도읍 관내에서 전화만 주면 언제나 고객의 입장에서 우편물을 신속하게 접수하여 처리 해주며 부고장, 청첩장 도 내용부터 주소, 봉투까지 위탁받아 처리 해준다. 죽청우편취급국은 우표,엽서,국내,국제특급, 우편택배, 등기 업무를 취급하는 작은 우체국이다. 소장에서 국장으로 명칭이 변경된 어사 박문수(문섭)는 지난 2007년도에 정보통신부장관으로 부터 우편취급 실적 우수공로로 장관표창을 받아 가문의 영광으로 인정받았다. 내고장 농수산물 팔아주기운동본부 카페를 운영하여 완도지역의 김, 다시마, 미역, 전복 등을 업체와 연결하여 우편택배비만 받고 발송해 주고 있다. 교회, 사찰, 인천 길병원 등에 연결하여 매년 1억여원 정도를 업체와 소비자간에 직거래로 연결하여 호평 받고 있다. 2009년 새해 기축년에는 소처럼 성실하게 지역경제를 위해 내고향 사랑하는 어사 박문수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어사 박문수가 운영하는 죽청우편취급국은 365일 년중 무휴로 접수해 주고 있다는 것. 농공단지 특성상 외국인 근로자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박 어사는 장보고대사의 유적지에 소재한 청해초등학교를 거쳐 완도중학교 출신으로 죽청리 토박이다. 현재의 우편취급국의 토지를 완도우체국 집배원으로 첫 월급을 모아 구입해서 24년동안 성실하게 근무하고 명퇴한 뒤에 죽청우편취급국을 개설한 의미있는 땅이라고 박어사는 자랑한다. 어사 박문수는 부인 감향자여사와 사이에 1남1녀, 아들 진우군은 군복무 후에 복학한 호남대학교의 학생회장이며 생전에 완도문화원 사무국장을 10년간 역임하셨던 춘부장(椿府丈)은 故,박인동씨이며 나무뿌리 공예가 취미이며 죽청농공단지에 우편취급국과 슈퍼를 운영하고있으며 작은 장인어른은 농공단지 입구에서 에덴가든 식당(061-553-6116)을 운영하고 있다. <石泉> 새감각 바른언론-완도청해진 www.wandonews.kr잊력:200901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