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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前대통령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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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前대통령 사망하다

23일 오전 연희동 자택에서 쓰러저

전두환사망.jpg

사진>향년 90.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지병으로 사망

 

[청해진농수산신문]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전 전 대통령은 최근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 골수종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오다 이날 오전 840분경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다.

전 전 대통령은 굴곡 많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정점
(頂點)문제적 인물이다. 하나회를 기반으로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5·18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다.

대통령 재임 내내 철권통치를 했고
,시민들은 결국 19876월 민주화운동으로 전두환 정권에 맞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쟁취했다. 퇴임 후에도 거액의 비자금과 전 재산 29만 원으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19311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에서 빈농(貧農)10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유년기에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그는
1952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학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육사시절 동기생인 노태우 전 대통령 등과 함께 오성회를 조직했다. 육사 11기 동기모임인 북극성회에도 적극 참여했다.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는 전 전 대통령에 기회가 됐다. 그는 육사 생도들의 5·16 지지 시가행진을 주도해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관에 발됐다.

전 전 대통령이
1963년 노 전 대통령 등 육사 11주도로 결성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는 훗날 집권의 기반이 됐다.1968년에는 청와대 경비를 담당하는 수도경비사령부 30대대장으로서 김신조 등 무장간첩의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처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 더욱 가까워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 인사과장, 1공수여단장, 대통령경호실 차장보, 보안사령관 등 잇따라 요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1980서울의 봄이 오면서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폭발적으로 분출됐지만 전두환의 신군부는 그 해 518일 비상계엄령을 확대하면서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거나 연금하고 국회도 폐쇄했다. 광주의 민주화운동은 군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어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간선에 의한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제11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19811월에는 민주정의당을 창당한 뒤 총재 자리에 올랐고, 2월 개정된 헌법에 따라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돼 7년 동안 재임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후부터 본격적인 철권 통치를 시작했다
.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의 하나로 설치한 삼청교육대에 일반인들까지 구금하며 악명을 떨쳤다.

동아방송 등 언론기관들은
야당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이유로 강제로 통폐합하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23일 간의 단식투쟁을 통해 민주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1987년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이한열 군 사망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증폭됐다. 결국 전 전 대통령은 19876월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수용했다.


1988
년 퇴임 뒤 국회에서는 이른바 ‘5공 청문회가 진행됐고 전 전 대통령은 재산 헌납을 발표한 뒤 백담사에서 은거했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추진하며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단죄에 나섰다.

그는 이른바 연희동
골목성명을 통해 내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 대통령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반발했지만 검찰은 19961월 전 전 대통령 등을 내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했다. 아울러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중 700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검찰은 20032월 당시 1872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한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그가 제출한 재산목록에는 현금은 없고 예금과 채권을 합쳐 291000이라고 적혀 있었다.

2013
년 여야는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시효를 2020년까지로 연장하였다.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개정안(전두환 추징법)을 통과시켰고, 검찰은 대대적인 수색과 압류에 나섰다.

결국
20139월 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함께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모두 내겠다고 장남 재국 씨를 통해 밝혔다. 추징금 환수 작업은 계속 진행 중이다.<광주 조영인본부장>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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