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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완도 출신 섬소년, 고향군수에서 농식품부 장관까지

기사입력 2018.02.2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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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속 출마, 상대 후보 꺾고 금배지, AI·쌀값 등 전문가


    사진> 김영록장관
    [청해진농수산신문]"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다였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63)이 쓴 책 제목처럼 그는 고금도 섬 출신이다.

       
                 김 영 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1955년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공부를 잘했던 섬 소년은 광주의 명문 광주제일고에 입학, 건국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학부 시절 행정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행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궁금했던 고금도 섬 소년은 제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다.

    전남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4년 전남 강진군수가 됐다. 강진에 이어 고향인 완도에서도 군수로 일했다. 금의환향한 것이다. 이후 전남 목포 부시장 등 행정경험을 두루 쌓았다.

     2008년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30년간의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중앙무대에 진출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해남군ㆍ완도군ㆍ진도군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 초반 열세를 보였지만 상대 후보를 기적처럼 누르고 18대 국회의원의 주인공이 됐다.

    김 장관은 당시 선거 초반 어려움이 너무 많아 차 안에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2012년엔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선거에 나가 재선에 성공한다. 김 장관은 국회의원 재임 기간 동안 6년을 농림축산식품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쌀값 문제에 밝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국회의원 시절에는 쌀 목표가격 인상을 두고 국회 로텐더홀에서 철야농성을 했다. 2013년 12월의 일이다. 언론보도에 비친 김영록 당시 국회의원(민주당 간사) 앞에는 쌀 한 가마니가 놓여 있었다.

    당시 그는 "지난 8년간 17만원에 묶여있던 쌀 목표가격을 최소한 물가상승분만이라도 반영하기 위해 민주당과 새누리당 그리고 정부가 6인 협의체를 구성해 나흘간 협상을 진행했으나 정부와 새누리당의 태도 변화가 없어 사실상 결렬됐다"고 분노했다.

    쌀값 안정은 그때도 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장관이 되고 나서도 쌀값 안정은 숙원과제다. 취임 100일 간담회 때 "쌀값 안정이 농정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농식품부는 12만원대까지 폭락했던 쌀값을 올리기 위해 과감한 선제조치를 단행했다. 2010년 이후 최대 규모인 37만t의 쌀을 시장 격리했고, 생산조정제도 도입했다.

    김 장관은 "쌀값을 안정시키는 것이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자, 농민들의 무너진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이라며 "처음에는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있었으나 현장 농업인과 농협 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쌀값은 80㎏ 기준 15만9908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12만9637원)보다 23.3% 오른 것이다. 김 장관은 올해 쌀값 목표를 18만원대로 잡았다. 쌀값이 2016년보다는 많이 상승했으나 평년(16만원)에 비해서는 아직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김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생산조정제 목표달성 시 쌀 생산량이 약 25만t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돼 지난해보다 높은 수준인 17만5000~18만원을 목표로 생각한다"며 "쌀값이 안정되면 변동직불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만큼 절감된 예산과 자원은 밭작물 기반정비, 축산업 근본적 개선 및 공익형 직불 확충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더블어민주당의 전남도지사 후보군으로 이개호 국회의원과 김영록장관이 거명되고 있다.
    <광주 조영인본부장, 농수산 윤성호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 www.chj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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