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5 (토)
청해진, 멋진 완도를 꿈꾸며!
石泉 金 容 煥
(법무부 보호관찰 전문범죄예방위원, 본지발행인)
수년전에 유럽여행 안내를 하면서 프랑스 파리에 잠시 체류하던 중 한국에서 온 지인을 우연히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로변의 마로니에 나무가 잎을 떨군 스산한 잿빛의 겨울이었다. 파리 방문이 처음이라는 지인은 나를 보자마자 “참 차분하고 조용한 곳이 구나”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부산한 거리풍경에 익숙한 그는 이국의 낯선 도시의 첫인상을 그렇게 표현하였다. 나는 도시 전체의 색조가 튀지 않고 절제된 까닭에 800만의 인구가 내뿜는 소음마저 적막하게 느낄 수도 있으리라 이해했다. 그의 말은 내가 파리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을 회고하게 만들었다. 차분히 아름다워서 오히려 생소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그와는 달리, 파리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데자뷰'의 환상 바로 그것이었다.
그 도시는 꼭 언제인가 이미 와 본 듯하고 또 살아 본 듯도 한 익숙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마도 파리의 빼어난 매력에 나도 모르게 녹아들어 마치 그 도시의 일부인 양 일체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 한다는 도시 파리는 프랑스인의 삶과 정신의 풍요로움을 한껏 과시한다. 프랑스는 일찍이 18세기부터 유럽문화를 주도했기에 파리는 그 당시부터 이미 유럽인들이 선망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오늘날의 파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때로는 대담한 개혁으로, 또 때로는 조용하면서도 세심한 실천으로 도시를 가꾸어 온 근대 프랑스인들의 노력의 결과물이다. 나폴레옹 3세와 파리 지사인 오스만 남작은 혁명적인 도시개발 계획을 세우고 1853년부터 이를 과감하게 실천하였다는 것. 이에 따라 파리는 근대적 대도시로 면모를 완전히 일신하였다. 복잡하고 비위생적인 중세의 거리들이 철거되고, 불바르라 불리는 사통팔달의 대로들이 뚫렸다. 가로수와 가로등이 도시 미관과 시민의 편의를 위하여 주도면밀하게 설치되었다. 1855년에 열린 만국박람회를 계기로 독일의 비스마르크 재상,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을 위시한 외교 사절,기업가들이 파리를 방문하게 되면서 파리는 유럽뿐 아니라 신대륙의 관광객까지도 끌어들이는 세계적 관광도시로 자리를 굳힌다.
현재의 파리를 구성하는 수많은 기념물들이 이후에도 꾸준히 추가되었다. 화려한 가르니에 오페라는 1874년에, 에펠탑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물로서 1889년에,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 파리를 굽어보며 위용을 떨치는 사크레 쾨르 성당은 1919년에 각각 완공되었다. 우리 시대에 들어서도 퐁피두 문화센터, 루브르 박물관 앞의 유리 피라미드, 라데팡스의 신개선문 등이 연이어 건립되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더욱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파리는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전통에 주눅 들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며 스스로를 갱신해 나갔던 것이다.
파리의 아름다움은 거대 건축물뿐 아니라 도시를 누구보다 사랑하고 도시에서의 생활을 누구보다 열심히 즐긴 작가와 예술가들 덕분에 더욱 빛난다. 완도를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만들 예총의 복합문화센터 건물이 완도군의 야심작으로 건축되면 완도는 문화도시로 성장 될 것이다. 청해진 완도는 장보고유적지 개발과 장보고동상 건립, 동망산전망대, 봄의왈츠 및 해신세트장, 해조류연구소, 체험관, 남해안 최고의 명사십리개발 등 완도에서 모처럼 힘차게 개발되는 이 큰 도약이 청해진 완도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되어, 훗날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걸맞은 도시로 완도가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처음 청해진 완도를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설레는 낯섦과 편안한 익숙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계좌번호 복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