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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장수 의원 소안 항일운동 사업회 회장

기사입력 2005.08.28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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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 의원-
      (소안 항일운동 사업회 회장, 완도군 의회)

       60억 투입, 어촌체험관광단지 조성 활기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해 검증이 끝났다.

      개막이 행사에 대한 복안이 마련되어
        향후 상당한 부가 창출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올해는 광복 60주년을 맞는 완도군민 모두에게 뜻 깊은 해로 기억되고 있다. 완도는 항일운동의 발상지이자 특히 소안도는 완도군에서도 주된 발상지로 항일운동 사에서 특기 할만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소안도가 항일운동의 전초기지로 주목받고 있는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무엇보다도  애국심과 리더쉽이 강한 선구자들의 영향이 컷 다고 본다. 당시 신 지식인들은 후학들에게 학문을 전파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주민들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고양 시켰다.   잘 아시겠지만 송내호 선생 같은 분은 당시 중앙고보를 졸업하고도 고향에 돌아와서 교육 계몽에 힘쓰면서 주민들에게 항일을 일깨워 준 결과 소안면민들이 자긍심으로 무장되었다는 사실을 훗날 깨닫게 됐다.


    □ 현재 군 의원 외에 소안 항일운동사업회 직함을 갖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안면은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다. 항일운동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함께 1948년 건준 이후 6.25까지 소안민의 행적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른바 보도연맹 사건으로 숨져간 넋을 위로하면서 역사를 바로 세우자는 것이다.


    □ 그렇다면 당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 몇 십 명을 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함께 추모할 수 있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시다시피 1905년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으로 빼앗긴 땅을 토지소유권 반환청구소송으로 되찾았다. 13년만의 승소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사립소안학교와 비자리에 항일독립기념탑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너무 협소해 국비 도비 군비 30억을 배정 받아 올 6월 기념탑 옆에 기념관을 세웠다. 후학들을 위한 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 앞서 밝혔듯이 항일운동 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이 같은 기념사업회를 확대 발전시킬 복안도 갖고 있는가.


    -그렇다. 저 개인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면민들과 여러 향우들 간에 현재 이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옛날에 십시일반이란 말이 있듯이 모두가 중지를 모아 보다 더 큰 사업으로 전환시키고자 한다.


    □ 화재를 바꿔 군 의원으로서 소안면의 주된 소득원과 이에 따른 경제적 측면은 어떤가.
     -주된 소득원은 여타 섬들처럼 해산물이다. 그중 우리 소안면은 김을 주로 생산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일년 판매금액이 1백50억원에 이르지만 이는 수치상의 금액일 뿐 김 생산 인구는 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도시 경제로 말하자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다.


    □ 그렇다면 이 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타결 책을 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선 먼서 관광산업을 들 수 있다. 다만 이 관광사업은 SOC사업이 가능했을 때 이루어 질 수 있다. 말하자면 교량이 새로 건설되어야하는 등 관광의 구조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실 예로 보길도와 신지도 처럼 서로 관광산업을 보완 할 수 있는 연륙교 등의 가설은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반전이라고 생각한다.
     
    □ 소안도에서 관광산업이 가장 부각되는 산업이라면 이에 걸 맞는 산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딱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이것저것 나열하는 현상만 초래할 뿐이다. 77년에 소안 인구가 1만 1천명에 육박했으나 현재는 3천5백 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인구 감소는 농어촌의 보편적 현상이지만 따지고 보면 먹고살기 힘들어 도시로 떠나는 현상이다. 이를 제지할 길은 어느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제도적으로 막을 길은 없다.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주민소득 창출을 위해 지난해부터 개막이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썰물 때 바다의 수로를 막아 고기를 잡는 체험행사를 말한다. 지난해 해양수산부로부터 60억원의 예산을 배정 받아 현재 월항리, 이목리, 미라리 앞바다를 중심으로 기초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사업이 완공되면 내년부터 상당한 부가 창출되리라 믿는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지난해 행사에 대한 검증이 끝났다. 향후 이 개막이 행사에 대한 복안이 마련되어 있다.


    □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김의원은 시종 활기가 넘쳐흘렀다. 패기 넘치는 그의 행동과 발언은 그가 군 장교로서 다년간 예비군 중대장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재 김의원의 나이 55세. 그 시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그도 어린 시절 춥고 배고픔을 겪었다. 소년 시절 그런대로 가정을 유지해가던 아버지가 5.16주체세력인 박정희 장군과 사사로이 인연을 맺었다가 정치적 희생물로 전락되면서 가계가 기울자 이런 저런 사정으로 중학교마저 진학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가까스로 고등공민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공부가 훗날 목포의 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육군소위로 제대 한 뒤 소안면 예비군 중대장을 거쳐 97년 보궐선거로 제도권에 진입한 2선 의원이다. 현재 부인 정향미 여사 사이에 1남 2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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