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보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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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재경 완도군 향우회 임원들이 홍보대사로마을따라 전설따라 -청해진 특별기고- 재경 완도군 향우회 임원들이 홍보대사로 새롭게 태어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재경완도군 향우회 부회장겸 사무총장 김 영 남 뭍으로 나가는 게 꿈이었고 소 한마리 풀먹이고 지게지고 취로사업과 울력하는 게 너무 싫어 목포로 가는 객선 여비만 있으면 도망치듯 가출하겠다고 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고향을 발로 차듯 뿌리치고 유학을 했지만 돈 벌지 않으면 고향땅을 밟지 말아야지 하면서 하루에 한 번 다니는 목포행 여객선에서 수평선너머로 흘린 눈물을 삼키며 두 주먹 불끈 쥐고 가슴속에 담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년세월이.. 그 동안의 의미 없이 왔다가 가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재경완도군향우회에서는 고향을 바로 알아야 주변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에게 널리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2박 3일간의 완도투어를 계획했다. 우선 향우회에 봉사하는 지도자들인 12개 읍·면 회장단 임원(군 부회장단, 사무국장단, 여성회장단, 청년회장단)으로 구성하여 고향을 방문하였으며, 우리 모두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정을 듬뿍 체험했다. 그간 10여년 동안 내고향 완도는 세계속의 훌륭한 도시로 급변했다고 우리눈으로 체험하고 느끼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모두가 감탄 했던 게 이번투어의 성과이고 모습이었다. 첫 행선지를 향해 버스를 타고 고금대교를 지나 약산 당목항에서 금일 일정항으로 가는 배에 버스를 싣고 금일읍에 도착하니 금일 여성회원들이 대형 프랑카드를 들고 우리 일행들을 위해 환영행사를 해줌에 감동을 받았다. ▶다시마의 고장 금일읍 금일읍은 다시마가 주산지라서 집집마다 밭을 파란골프장 그물로 펼쳐 깨끗한 다시마가 생산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금일읍 다시마는 일본 원전 사고로 인해 요오드 섭취가 방사능에 좋다고 하여 전국 각지에서 금일 다시마를 매수 하는 바람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정도로 일손이 바빴다고 한다. 금일읍의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찾은 곳은▶흑염소의 고장 약산면 약산면은 기세가 당당하다고 설명하는 양한창 재경 약산면 향우회님은 산세가 그렇게 좋고 물이 좋아 약초 뿌리를 통한 물이 약초물이라서 약산에서 태어난 사람은 안경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약산흑염소는 약초(삼지구엽초 등)을 먹고 자라 혀가 까맣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목한 흑염소는 험준한 산 계곡에서 약초를 먹고 자라서 무릎이 까져 털이 없는게 특징이고 흑염소 수육고기는 예로부터 궁중보양제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특별히 수육으로 내놓은 흑염소 수육은 정말로 맛이 일품이었고 냄새도 나지 않고 맛이 좋았습니다. 흑염소 두 마리가 10여분만에 동이 날정도로 이 맛을 표현해야 하는데 어찌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표현을 못함을 아쉬워한다. ▶고금도 이순신 장군의 충무사! 충무사는 선조31년(1598년)정유재란때 충무공이 명나라 수군과 본영을 이곳에 두고 대군을 크게 무찌른 곳입니다. 명량해전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치신 이후 이곳에 영구를 봉안 하였다가 지금의 현충사(충남아산)로 옮겨진 유서 깊은 곳인데.......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본영이다. 노량에서 전사한 이순신장군을 83일간 봉안하였다가 1599년 2월 11일 아산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장군을 봉안하였던 소나무옆은 지금도 풀이나지 않고 달이뜨는 월송대는 장군의 한이 서려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기를 받기위해 다녀간다고 한다. 고금도는 형세가 견고한 요새와 더불어 기름진 농토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므로 수군의 재건에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고 한다. 이때 당연히 완도의 장정들이 기꺼이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 합류하여 왜적을 물리치는데 한몫을 했을것이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이순신장군의 몰랐던 내용들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약산과 고금을 지나 완도읍을 거쳐 방문한 곳은 ▶항일운동의 성지 소안면 소안도 독립운동! 전국의 면단위로서는 애국지사가 57명(총88명)이나 활동하였다는 항일 운동의 섬 소안도는 일제시대 암흑기에 일제 경찰의 감시와 투쟁속에서 감옥에서 고생하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벽에 걸어놓고 고통을 함께 나누었다는 이야기에 너무도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해방운동 독립운동성지인 우리 완도 소안도의 자랑스런 선조들에 대해 우리들의 가슴속 깊은곳에 새기면서 고향의 긍지를 갖게 되었다. ▶노화도 전복체험! 노화읍에 도착하니 박성규 군의원과 정유승 노화읍장을 비롯한 관계공무원들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노화읍 북고리에 있는 전복체험장으로 향했다. 미리 준비한 김옥남 북고리 이장님의 안내로 배 2척에 나누어 타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전복의 성장과정을 모두가 체험하고 우리 일행들은 감동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더욱더 놀란 것은 전복김치, 전복물회 시식을 맛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 향우회 임원들의 전복체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이었다. ▶보길도 세연정! 정말로 아름다운 섬 어릴적 소풍가고... 산세좋고 물 좋은 축복의 섬 보길도를 다시 한번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 무이파 태풍으로 인해 삶의 터전으로 여겼던 전복양식장이 한꺼번에 휩쓸려간 보길도 중리지역은 엄청난 재산피해를 입었고 김병희 이장의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안타까움에 고향을 찾은 향우들도 눈시울을 글썽이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던 중 임영근 청산회장님께서 이천오백만원 상당의 물품을 협찬하였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렇게 훌륭한 고향탐방은 평생 한번하기 쉽지 않은 내 고향의 참모습을 재발견 한 것이 모든 향우회 지도자들의 한목소리였다. 우리고향 건강의 섬 완도가 자랑스럽고 뿌듯함을 느꼈고 이번 기회를 통하여 특급 홍보대사로 특명을 받고 열심히 우리 고장 완도를 홍보하겠다고 다짐했다. <재경완도군 향우회 부회장겸 사무총장 김영남>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2011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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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장보고축제, 해양테크노폴리스 기반 다진 바다대표 축제완도장보고축제, 해양테크노폴리스 기반 다진 바다대표 축제 축제기간 동안 1만2550명 방문…지역경제 활성화 한몫 ▲ 2011 장보고축제 청해진신문]완도장보고축제가 2014국제해조류 박람회 개최 준비와 해양테크노폴리스 기반을 다지는 바다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완도군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완도 해변공원과 장보고기념관, 장보청해진유적지 등에서 펼쳐진 2011 완도장보고축제에 총 1만2550명의 관광객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 '건강의 섬 완도, 청해진으로 떠나는 시간여행!'을 주제로 열린 이번 장보고축제는 2014 국제해조류 박람회 개최 준비와 해양테크노폴리스 기반을 다지는 바다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올해 장보고축제가 여타 축제와는 달리 완도에서만 볼 수 있는 해적소탕 해상전투는 물론 맨손고기잡이체험, 완도특산품경매, 전통노젓기대회 등 바다를 활용한 다양한 신규 프로그램을 개발, 관광객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장보고축제의 행사장에서는 매년 지역 농ㆍ수산물을 테마로 하는 전복ㆍ넙치 월빙판매관, 완도 농ㆍ특산품 홍보판매관, 해조류 음식관을 운영해 방문객에게 건강의 섬 완도의 우수한 특산품을 알리는데도 한몫했다. 또 지역 향토음식인 건강의 섬 완도 웰빙 음식을 관광객들에게 먹어볼 수 있도록 해 축제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군 관계자는 보고 있다. 이처럼 청산도 슬로우 걷기 축제와 장보고축제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해 현재 완도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활력이 넘치고 있다. 주민소득증대에도 크게 보탬이 돼 건강의 섬 완도의 슬로건인 '잘사는 완도 행복한 완도'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현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김모(완도읍 개포리)씨는 "이번 축제는 장보고테마 프로그램이 획기적으로 개편되고, 역사체험 프로그램이 신설돼 장보고축제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부각된 것 같다"면서 "장보고 해적소탕 해상전투와 완도 앞바다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은 청해진 해상 불꽃쇼는 군민들과 관광객에게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김종식 완도군수는 "청산도 슬로우 걷기축제를 적은 비용으로 23일간 개최해 아름답고 살기 좋은 완도의 이미지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면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실속 있는 축제가 됐다"면서 "장보고축제도 수많은 관광객에게 사랑받고 만족도를 높이는 품격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은 완도 군민과 기관ㆍ사회단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혔다. 한편, 완도군은 군민들의 소득증대를 위해 읍ㆍ면단위 지역 특성을 살린 '다시마축제', '전복축제' 등을 개최할 계획이다.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www.wandonews.kr 입력201105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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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화 첫 창작집 “길을 묻다” 소개- 石泉이원화 첫 창작집 “길을 묻다” 소개 <石泉 김용환. 사단법인 전국지역신문협회 교육담당 부회장, 청해진신문 대표기자겸 발행인, 시민일보 전국부(호남취재본부) 부국장> ▲ 石 泉 청해진신문] 이원화는 길을 묻는 것으로 상념의 실타래를 풀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작인 “길을 묻다”의 서술자가 적막한 실내의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은 다분히 상징적묘사이다. 컴퓨터 본체에서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 수족관에서 들리는 도랑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그녀의 방안은 모든 것이 정지되고 가라앉아 버린 어두운 내면의 공간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 정지된 공간에 붙잡아두고 있는 가! 그녀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자꾸만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리하여 좀처럼 앞으로 나아 갈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그녀로서는 비록 그것이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이라는 끝내 받아들일 수 없는 기억일지라도, 이를 회피하기보다 차라리 한층 적극적으로 과거를 끌어당겨 추억할 필요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를 사랑했던 자의 삶을 어떠한 대책도 없이 오래 오래 지배한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이원화 작가의 소설은 자문하고 있다. 죽은 자들을 땅속에 꼭꼭 묻는 순간 기억도 그렇게 묻어버릴 수 있다면, 산 자들이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 땅속에 그들을 꼭꼭 묻는 순간 남은 자 들의 삶도 함께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닐까(P.12). ▲ 이원화 소설-표지사진 주목되는 것은 이 소설이 작가의 지난날의 아픈 기억을 애써 헤집어 보임으로써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에 일종의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어렴풋이 예고되던 순간의 불안함과 떨림, 깊은 수렁과도 같은 병원을 허둥지둥 전전하던 입원치료의 날들의 신산함, 허공에 매달린 채 언제 죽음의 수류탄이 터질지 모르는 안전핀 뽑힌 폭탄과도 같은 죽음 앞에서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치골에 올라붙어 있던 성기의 종잇장처럼 얇은 표피를 따스하게 주물러주는 것으로 남편의 아픔을 완화 시켜주고자 했던 아내의 마지막 안간힘, 그리고 마침내 남편이 영안실로 옮겨지자마자 다른 환자의 침상이 마련되는 일상을 목격하던 종합병원, 순간의 헛헛함에 이르기까지……. 제발 죽여줘요, 제발, 남편을 죽여줘요, 죽여줘.(P.126) 암환자의 고통과 그 가족의 아픔을 묘사한 이원화의 소설은 한편의 사실을 적시한 드라마다. 오직 죽음이 삶을 자각하게 한다고 말한 것은 하이데거였던가,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이원화의 주인공은 죽음의 문제를 삶과 현실의 문제로 연장해 낸다. 남편의 부재는 남겨진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현실적 고통과 설움들을 남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는 삶과 죽음은 늘 한자리에 있다는 인식에 그 고통을 승화하고 있다. 그녀로 하여금 미래의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조심스럽게 손짓하게 만들고 있다. 그녀 역시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로부터 마치 “길을 묻다”의 주인공이 남편의 짐을 부려놓고 이제 그만 달빛에 기대어 보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그녀에게 유일한 숙명의 시간이자 그녀의 선택임을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알고 있을 것이기에……. 청해진 완도 금일 출신 이원화 작가의 소설 “길을 묻다”는 다양한 문학적 스펙트럼의 가능성이 내장되어 있음을 소개드립니다.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입력 20110307 소설가 이원화 첫 창작집 출판기념회 3월18일 길을 묻다 -광주 CMB방송국 2층 문화홀서 - 이원화 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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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위 김덕만 박사- 기존홍보를 확 바꿔라 출간[신간안내] 권익위 김덕만 박사 공보노하우 [기존홍보를 확 바꿔라] 출간 ▲ 김덕만 박사 청해진신문] 국민권익위원회 김덕만 홍보담당관(52.신문방송학박사)이 6년간의 공보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 [기존홍보를 확 바꿔라]를 발간했다. 헤럴드경제신문 기자출신으로 2005년 개방직공무원으로 공직에 들어 온 김 박사는 6년간 홍보책임자로 일하면서 국민권익위를 중앙부처 최우수 정책홍보기관으로 끌어 올리기까지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정리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자들이 즐겨쓰는 기사작법, 보도효과가 높은 카메라작법 행사스케치팁 인터뷰스킬 국제홍보 노하우 등을 정리하고 잇다. 그는 “대언론관계에서는 신속한 취재지원이 오보를 줄인다”며, “웹활용이 활발한 기자들에게 문자(SMS) 및 이메일을 통한 서비스가 원활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공직자는 식사자리든 행사자리든 항상 공인 신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며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자신의 판단으로 말하는 걸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김 박사는 친서민정책 민 공정사회 실현정책을 알리는 기고를 무려 1천여곳의 언론에 게재, 행정안전부로부터 기고왕을 인증하는 최고기록공무원 표창을 받기도 했다.<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입력 201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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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원화 첫 창작집 출판기념회 3월18일소설가 이원화 첫 창작집 출판기념회 3월18일 길을 묻다 -광주 CMB방송국 2층 문화홀서 ▲ 이원화소설-"길을 묻다" 출판기념회 초청 청해진신문] 소설가 이원화 첫 창작집 "길을 묻다" 출판기념회가 오는 3월18일 광주 CMB방송국 2층 문화홀(상무지구 시청앞)에서 오후 7시 열린다.한편, 소설가 이원화는 1969년 청해진 완도 금일 출생으로 바다는 늘 꿈을 꾸게 하는 힘이 되었다. 일찍 결혼하여 두 아이를 두었고 늘 허공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듯하여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였다. ▲ 이원화소설-"길을 묻다" 표지사진 방송통신대와 광주여자대학교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길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2006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길을 묻다”가 당선되어,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광주여자대학교 대학원 한국어문학과 재학 중이다.<石泉 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입력 201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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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지역 인물·역사 ‘한눈에’완도지역 인물·역사 ‘한눈에’ 완도군번영회 ‘2010 청해지’ 발간 ▲ 박경남 번영회장 청해진신문]완도의 인물과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지역보고서가 발간됐다. (사)완도군번영회(회장 박경남·사진)는 14일 완도지역 기관·단체장과 행정기관·경제 및 문화관련 단체 등을 총망라한 ‘2010 청해지(淸海誌)’를 발간했다고 밝혔다. 총 560여 쪽에 달하는 이번 청해지에는 김영록 국회의원, 김종식 완도군수, 박삼재 완도군의회의장, 노병현 완도경찰서장, 박정순 완도문화원장 등 완도지역 기관·단체장의 인터뷰가 실려 그들이 지난 한해 지역을 위해 일했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완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표 골퍼인 최경주, 장애를 극복하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이윤리, 얼짱 당구스타 차유람 등 지난 한 해 완도를 빛낸 인물들도 소개했다. 이와 함께 완도군청을 비롯 경찰서, 해경, 각 읍면 사무소와 농업기술센터, 기상대 등 기관의 현황과 사업내역 등을 자세히 소개해 자료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특히 각읍면 번영회와 체육회, 청년회, 여성단체, 봉사단체 및 영농조합까지 지역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사회단체를 총망라해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해상왕 장보고대사와 고산 윤선도 선생 등 완도와 연관 있는 역사적인 인물들을 담아 교육적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박경남 회장은 “우리고장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완도인으로서 알아야 할 자료를 수집해 청해지를 발간하게 됐다”면서 “노력의 산물로 탄생한 청해지가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좋은 역사적 자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w.kr / www.wandonews.co.kr 입력 201102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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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詩)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신년 시(詩)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삼백 예순날 다 보낸 세모 끝에서 일그러진 자화상에 회한의눈물 흐르네 해 넘어가네 해 넘어가네 모든것을 떠나 보내려하네 참회의 고백을 하며 두손을 모으네 마지막 밤을 어찌 그냥 보내리오 보신각 종소리 울리네 제야의종이 새하이얀 밤을 깨우네 첫날 아침이 밝아오오 절망을 살라먹고 떠 오르는 태양을 보오 희망의 불꽃으로 타 오르오 사는날이 많이 남았다고 말하지 마오 어떤이는 세월이 젯트비행기 같다 하더이다 하얀머리 할매는 빛의속도로 왔다 하더이다 남은세월 떠나 보내기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오 용서할 사람 용서하고 사랑할 사람 사랑하고 당신 너무나 훌륭하오 세상은 살맛난다고 말해다오 따사로운 햇살을 품고말이오 -신묘년 원단에 서 해 식(시인) ▸미션21작가회 부회장 ▸본지 도민편집장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 2011013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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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완도군 12읍면편 ①고금면-김경주면장기획-완도군 12읍면편 ①고금면 친환경 농산물과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의 고장 고금도로 오세요! ▲ 김경주 고금면장 안녕하십니까! 고금면장 김경주입니다. 아름답고 인심좋은 고금면을 방문해주시는 전국의 향우 여러분과 관광객 여러분들을 4,800 면민들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2천여 세대에 4,800여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유인도 2개를 포함하여 33개마을로 구성되어 농·어업이 적절히 잘 조화되어 있는 고금면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마지막 본영으로서 공의 영구를 83일 동안 봉안하였다가 충남 아산으로 모셨던 유서 깊은 충절의 고장이며, 청정해풍과 유기농으로 생산한 품질 좋은 유자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2007. 06. 29일에 강진군 마량과 고금간 760m의 연륙교가 완공되어 동으로는 약산면, 금일읍, 생일면을 잇고, 남으로는 신지면, 완도읍을 북으로는 마량면, 강진읍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하였습니다. 우리 고금에는 고금대교의 절경과 이충무공의 영정을 모시는 충무사가 있으며 친환경 농산물과 다양하고 싱싱한 해산물이 사계절 내내 생산되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우리고장을 찾아오시면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고금면상정리 다목적회관 준공기념 마을주민 기념사진-중앙 우/김종식군수 좌/김경주 면장 ▶고금면 연혁 1384년 용초리에 천씨가 입도 거주 1598년 덕동에 고금진 설치 (강진에 예속) 1896년 완도군 설군으로 완도군에 편입 1949년 고금면에서 약산면이 분면과 동시 면사무소를 덕동리에서 농상리로 이전 1977년 현 청사 신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고금면 유래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부속되었고, 통일신라 시대에는 탐진현(眈津縣)에 속해 있으면서 828년 완도에 청해진이 설치되어서 그 기간중에는 이웃 신지도와 조약도가 함께 그 관하에 있었으며, 고려시대에는 1124년 탐진현에 신설된 장흥부(長興府)에 편입되어 장흥부에 소속되었다. 조선시대 1417년(태종 17년) 도강군(道康郡)과 탐진현을 합하여 강진현(康津縣) 으로 개편됨으로써 대구면 고금도로 1896년 본군이 설군되기까지 480년간 강진에 속해 있었다. 고금도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때 절략의 요충지로 1598년 2월 18일 덕동(德洞)에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수군본영을 설치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왜적을 전멸한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그 후 1600년(宣祖 33년) 소모별장(召募別將) 진을 두었다가 곧 없애고 1673년 별장(別將)진을 베풀었다. 여기서 별장(別將)이라함은 산성(山城), 도진(渡津), 포구(浦口), 보첩(保疊), 소도(小島) 등의 수비를 맡은 종9품의 무관 벼슬을 말한다. 1681년 고금도진(鎭)을 덕동에 비로소 설치하고 첨사(僉使)를 두어 조약도, 평일도, 생일도 등을 관장하고 해상을 방제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생일도, 평일도는 거문도진에 이속하고 1895년 7월 15일 군제개혁으로 215년간의 고금도진은 없어지게 되었다. 옛날에는 도명(島名)을 고이도라고 하였는데 차차 변하여 고이도가 되었다 고금도(古今島)로 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전한다(여지승람 경국대전). 군이 생기기 이전 강진현에 속해 있어면서 1681년(숙종 7년)고근도진이 설치된 후부터는 호적과 사송(詞訟)은 강진현에서, 군무와 기타 행정은 고금도진에서 관장하였으며 징세(徵稅)와 행정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농소면과 남면으로 분리되어 있다가 군이 설립된 후 1910년에 고금면으로 통합하였다. 그 당시 본 도의 총 지세(地稅)는 220結로 농소면의 95결은 강진현 호조에 봉납 하고 남면의 125결중 98결은 양청(糧廳;寧平君 地 徵稅)에 상납하고 남은 27결은 신지진 호조가 맡았으나 1886년부터 원장과 함께 관왕묘(關王廟)로 이관했다. 이관된 이 제도는 설군 후에도 둔전(屯田) 및 사토제로 존속되어 1910년까지 지속되었었다. 농상리에 두었던 고금면사무소는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조약면을 폐합하여 덕동리로 면사무소를 신축 이전하였으며 이때부터 상근 집무가 시작되었다. 해방후 1949년 4월 1일 조약도가 본 면에서 분면되어 약산면으로 독립되어 나가고 면사무소는 다시 농상리로 이전하였다. ▶고금면 역대면장 1대 오기만, 2대 김창호, 3대 오기호, 4대 박노훈, 5대 박노천, 6대 서홍열, 이상은 일제강점하. 7대 우장승, 8대 황권우, 9대 손원창, 10대 우장승, 11대 박성규, 12대 박성규, 13대 김천영, 14대 김충호, 15대 김창호, 16대 박갑윤, 17대 김연식, 18대 손기춘, 19대 배우영, 20대 박병호, 21대 김정열, 22대 정용우, 23대 조세환, 24대 오우종, 25대 이수훈, 26대 이문교, 27대 박남수, 28대 이경동, 29대 조정석, 30대 박명규, 31대 김경주(현)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 2011013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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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 자연도 넉넉한 다시마·전복 천국-금일읍 평일도인심도 자연도 넉넉한 다시마·전복 천국 완도군 금일읍 평일도 ▲ 완도금일수협 다시마 수매 - 다시마 위판을 하는 모습 청해진신문] 서울에서 4시간 20분가량 달리면 강인 듯 바다인 듯한 물길이 앞을 가로막아 설 때쯤 강진 마량포구에 도착할 수 있다. 다시 연륙교를 지나 고금도로, 또다시 약산대교를 넘어 당목항까지, 여기에서 철부선(鐵浮船)을 타야 비로소 평일도(平日島)에 도착한다. 배를 타는 시간은 불과 20분 남짓, 그래도 ‘교통이 편하다’는 말이 선뜻 나오지 않는다. 섬 속의 섬이다. 섬 같지 않은 섬이기도 하다. 3,961명. 평일도 주민 수다. 마을만 23개, 50세 이하 ‘젊은’주민도 1,673명으로 60세 이상(1,564명)보다 더 많다. 자식들 가르치겠다며 뭍으로 떠나는 주민들이 많은 여느 섬과 달리, 먹고 살 것 찾아 섬으로 들어오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2곳의 유치원에 초·중·고등학교까지 있다. 매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도 8만명에 달한다. ▲ 금일 다시마 한낱 섬으로 여길 정도로 작지도 않다. 평일도 땅(28.1㎢)은 여의도 면적(2.9㎢)의 10배다. 하룻동안 승용차로 둘러보기도 쉽지 않은 규모다. 이런데도 평일도라는 섬 이름을 낯설게 느끼는 지역민들이 많다. ‘금일’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서다. 행정구역상 완도군 금일읍에 속해있는데다, 지도를 펼쳐도 ‘금일읍’으로 표시돼 있다. 다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래도록 왜적의 침입 없이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던 곳이라 해서 ‘평일도’라 불렸다는 어원이 전해진다. 은근한 자부심 때문인지, 주민들은 금일 외에 평일도라는 이름도 즐겨 쓴다. 또 뭍에 가려면 약산 당목항을 이용해 강진으로 나가는 경우가 빠르다보니 생활권은 강진에 속한다. 크기만 큰 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뭍사람들이 놀랄 만한 부자 섬이기도 하다. “상갓집 부의금으로 평균 10만원을 내고 잔치나 상을 치를 때면 소를 잡는다”, ‘4,000cc급 대형승용차가 흔치 않은 시골인데도, 누구나 타고 다닐 정도로 쉽게 볼 수 있고 외상 술을 흔쾌히 내준다’는 우스갯소리는 평일도를 비롯, 완도에서 빠지지 않는 ‘좋은 시절’얘기다. 완도금일수협 구택종 조합장은 “김을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 평일도는 전국 최대 김 생산지로 많은 돈을 벌면서 ‘강아지가 500원짜리 지폐를 물고다닐 정도’로 부자 섬이었다”는 얘기도 들려줬다. 금일읍 서해식씨(장로,시인)는 “평일·금당·생일면을 통합해 금일읍으로 승격됐던 1,980년도만 해도 평일도내 초등학생만 1,800명에 이르고 전체 주민이 1만3,000명에 달했던 섬”이라고 말했다. 섬의 주업은 이제 다시마와 전복 양식으로 바뀌었다. 김 양식으로 풍요로웠던 시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 해 논·밭을 일궈 얻은 소득보다 훨씬 많이 벌 수 있다. 다시마 채취의 경우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수확하는 최대 생산지로, 수확이 한창인 4월∼6월 초면 섬 대부분이 거대한 다시마 건조장으로 변할 정도다. 양식재배 주민들만 1,200가구가 넘는다. ‘한 해 하고 나면 ‘다시는 안 하마’라고 해서 ‘다시마’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로 손이 많이 가는 게 다시마다. 바다에서 건져 올려 햇빛 좋을 때 골라 말리고 수십차례 바닥에 붙은 이물질을 닦아내야 한다. 가뜩이나 일손 구하기 힘든 섬에서 웬만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뭍으로 자식을 유학보내고 두집·세집 살림을 위해 전셋돈을 마련하는 밑천이다. 올해도 수협 위판 가격이 ㎏당 4,000원, 4㎏에 2만원 수준으로 지난해(1만5,000원)보다 올랐다. 힘들지만 억척스럽게 매달리는 증거이리라. 최근에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350여가구가 전복 양식을 하며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섬 한가운데 망산(235m)이 솟아 있고 이 산자락이 뻗어내린 산지형인 탓에 논·밭을 일구는 대신 주민들이 바다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평일도 해당화 해변과 월송리 해송림은 이들 주민들이 어업 외에 평일도를 전국에서 찾는 섬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대표적 관광 자원이다. 3.5㎞에 이르는 해당화 해변은 곱고 깨끗한 모래가 활처럼 휘어져 있는데다, 250m까지 들어가도 될 정도로 수심이 얕고 백사장 경사가 느릿하다. 그러면서도 툭 터진 앞바다로 파도 기세가 세, 남해안 유일의 파도 타기 명소로 꼽힌다. 한때, 관절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흔적조차 찾기 힘들어진 해당화 해변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해당화를 심는가 하면, 2,500그루의 해송림 주변도 깨끗하게 정비해놓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앉아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운남바위’, 거북이 바다를 걷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 붙여진 평일도 앞 ‘거북섬’등도 볼거리라며 일러준다. 섬에서만 느끼는 주민들의 인심도 넉넉하다. 양식한 전복을 다양하게 요리해 한 다리 휘어지게 내놓고 “남기면 안된다”며 소매를 붙잡는다. 섬 전체를 두른 절경에, 뭍사람을 받아주는 넉넉함. 평일도가 가보지 않은 사람에겐 가고 싶은 섬, 한 차례 가봤던 사람에겐 다시 발길이 가는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 2011013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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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 완도군 지역의 종교단체 현황-2010청해진신문 창간10주년-청해진 완도군 지역의 종교단체 현황(2010년 현재) 【 종교단체 현황-1 】 종교별 종 교 명 주 소 연락처 신도수 (명) 책 임 자 직 분 성 명 기독교 성 광 교 회 완도읍 개포리 1248-12 554-3400 3,413 목 사 정우겸 중 앙 교 회 완도읍 가용리 1061 555-2264 330 〃 이하순 제 일 교 회 완도읍 중앙리 782-98 552-0333 600 〃 김민호 순복음중앙교회 완도읍 개포리 1274-2 552-0174 300 〃 장정환 안디옥 교회 완도읍 가용리 123-1 554-1004 300 〃 이의식 주사랑 교회 완도읍 가용리 1030-10 553-2600 130 〃 김용섭 시 온 교 회 완도읍 가용리 1063-6 554-3975 170 〃 이병호 화 흥 교 회 완도읍 화흥리 567 552-4307 128 〃 정호성 대 신 교 회 완도읍 대신리 753-1 552-1868 50 〃 장해룡 서부순복음교회 완도읍 중도리 174-15 552-1929 〃 김정기 성 민 교 회 완도읍 가용리 479 553-0192 14 〃 이상진 망석리 교회 완도읍 망석리 769-1 552-0711 27 〃 이상현 은 혜 교 회 완도읍 가용리 434-1 552-6245 25 〃 김종석 완도읍 교회 완도읍 개포리 1225-6 552-2890 70 〃 김한숙 장 로 교 회 완도읍 가용리 1063-8 553-8762 〃 류관현 장좌리 교회 완도읍 장좌리 147-3 552-0176 30 〃 정일택 죽 청 교 회 완도읍 죽청리 400-2 554-3911 40 〃 배영기 청해진 교회 완도읍 대야리 679 552-4496 75 〃 김준수 하늘단비교회 완도읍 군내리 680 552-2428 9 전도사 황석종 예수사랑교회 완도읍 성내리 726 554-7312 15 목 사 김영호 한국섬마을선교회 완도읍 개포리 1232-9 554-4300 100 〃 김정두 여호와의 증인 완도읍 노두리 1155-1 552-0125 25 〃 김기혁 안식일 교회 완도읍 개포리 1274 553-4029